새로운 패러다임의 전인적 약사의 역할
The Changing Role of Pharmacists in a New Paradigm toward a Humanistic Approach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약학과a, 서울대학교병원 약제부b
Department of Pharmacy, Graduate school of Dongguk University, 32, Dongguk-ro, Ilsandong-gu, Goyang-si, Gyeonggi–do, 10326, Republic of Koreaa Department of Pharmacy,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101, Daehak-ro, Jongno-gu, Seoul, 03080, Republic of Koreab
Correspondence to:†Kyeng Hee Kwon Tel:+82-31-961-5216 E-mail: khkwon@dongguk.edu
* 이대성과 조윤숙은 공동 제1저자로서 본 논문에 동등하게 기여함
Revised: February 15, 2024
Accepted: February 16, 2024
J. Kor. Soc. Health-syst. Pharm. 2024; 41(1): 48-60
Published February 28, 2024
https://doi.org/10.32429/jkshp.2024.41.1.005
© The Korean Society of Health-system Pharmacists.
Abstract
Keywords
Body
인구 고령화, 질병 다양화, 의료기술 진보 등 현대 보건의료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국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고 효율적인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1),2) 또한 최근에는 헬스케어 모델이 공급자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으며,3) 이는 4차 산업혁명 속에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같은 첨단 기술이 의료 서비스에 통합되어 의약품 관리와 환자 데이터 분석에 활용되고 있다.4),5) 이러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에서 개인 맞춤형 건강 관리 및 의료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약사는 보건의료 시스템 내에서 의약품의 효과적이고 안전한 사용 및 관리를 책임지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 중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약사는 의약품 중심의 접근(medi-cine-centered approach)을 기반으로 처방에 따라 의약품을 조제(dispensing)하고, 환자에게 의약품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약사는 임상적 지식을 활용하여 처방된 약물요법(drug regimen)을 검토하고, 약물 간 상호작용(drug interactions)을 최소화하여 부작용을 예방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6),7) 특히 현대에 들어서면서 만성 질환 및 고령 환자가 증가하면서 건강 관리에대한 요구가 복잡해지는 등 약국을 둘러싼 보건의료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Fig. 1).8) 이러한 변화속에서 전통적인 약사의 역할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환경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어 최근 환자 중심의 접근(patient-centered approach)으로 전환할 것이 강조되고 있다.9),10) 이는 약사가 단순히 질병 치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환자의 경험, 기대, 선호도 등을 포함하는 삶 자체를 이해함으로써 질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1) 이러한 접근을 통해 건강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을 밝혀내고, 중요한 삶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더 성공적인 건강 결과(health out-come)를 얻을 수 있다.
한편 1996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을 ‘생활습관병’ 으로 재정의했는데, 식사습관, 운동습관, 흡연 등 바람직하지 않은 생활습관이 이러한 질병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위험요인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12) 실제 과잉섭취, 운동 부족, 스트레스와 같은 생활습관 문제들이 다양한 질병의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13)-17) 이러한 상황에서, 환자가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질병의 근본적인 치료에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약사는 환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일차보건의료(primary healthcare) 전문가로서 단순히 약을 조제하고 관리하는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서 환자의 심리적, 사회적 요인을 고려한 전인적 접근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에서 이미 지역사회의 일차보건의료 체계 속 약사의 개입이 환자의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18)-21) 현재 한국의 약국 역할과 약학대학의 교육 및 평가 시스템은 이러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지역약국 및 병원약국은 여전히 조제와 약물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어,22)-24) 환자들의 건강 요구 복잡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도 제한이 있다. 그리고 약사 국가시험이 2015년부터 직무 중심의 통합 4영역 체계로 개편되고 약학대학의 교육과정이 2+4년제에서 통합 6년제로 전환되었지만,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약사들의 임상 역량이나 환자 및 다른 보건의료인과의 인문학적 소통 능력 향상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따라서 이제 약사들이 단순히 약을 넘어서 환자들의 증상 치료와 내면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멘토약사(men-tor pharmacist)’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이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약사의 역할을 고찰하고, 약사가 ‘멘토약사’로서 환자의 건강관리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약학대학 및 약사 교육에 필요한 변화에 대해 제언을 하고자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약사들이 사회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보건의료전문가로 인정받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약사의 역할 : 의약품 사용 및 관리를 넘어 포괄적 건강관리까지
한국에서 약사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의약품 사용 및 관리에 대한 요구에 따라 진화해 왔다. 한국의 「약사법」(법률 제19897호, 시행 2024.1.2., 일부개정)에서 약사(藥師)를 정의하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약사는 한약에 관한 사항 외의 약사(藥事)에 관한 업무(한약 제제에 관한 사항을 포함한다)를 담당하며, 이는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자에 한하여 수행할 수 있다. 이때 약사의 역할은 약사법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증진법, 보건의료기본법, 지역보건법 등 다양한 법률에서도 언급되고 있다(Table 1). 종합적으로 볼 때, 국가는 약사에게 환자들이 의약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즉, 약사들은 전문약사 제도, 다제약물 관리 프로그램, 의약품 안전 사용 교육 등 다양한 제도와 정부 사업을 통해 심화된 약물치료를 제공하며, 환자의 치료에 기여하고 국민이 의약품을 올바르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약사가 의약품 사용 및 관리의 책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의약품을 사용하는 환자의 심리적, 사회적 요인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역할의 중요성도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이는 현대 의료 분야에서 환자 치료에 있어 정신 건강 및 사회적 요인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을 반영한다. 이러한 경향은 다양한 연구와 모델들, 특히 1977년 George L. Engel에 의해 정의된 생물-심리-사회 모델(bi-opsychosocial model)을 통해 뒷받침된다(Fig. 2).25)
생물-심리-사회 모델은 환자를 그들의 광범위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생물학적(biological), 심리적(psychological), 사회적(social) 요인을 고려한 맞춤형, 개별화된 치료 계획을 개발하는 데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로 정의한 것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26) 한편 해당 모델에서 강조하는 개별화된 치료 접근법은 환자의 사회적 상황과 경제적 조건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함으로써 더욱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사회적 상황과 경제적 조건은 건강(health), 의료 접근성(heal-thcare access), 의료 결과(healthcare out-come)의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27) 이러한 이해는 의료 분야에서 환자 치료를 단순히 의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사회적 및 심리적 측면을 포괄하는 더 넓은 시야를 통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 생활습관이 건강에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고 있으며, Marlatt는 라이프스타일 균형 모형을 제시했다.28) 이 모델은일상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와 스트레스를 완화하는활동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며, 이 균형이 식습관, 사회적 관계, 그리고 영적 생활을 아우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약사의 역할은 현대 의료체계 내에서 질병의 증상과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고, 예방 및 관리 전략을 개발하여 실행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미 환자의 신체 상태와 처방된 약물 등을 포함한 생물학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데 숙련된 전문가인 약사는, 이제 환자를 교육 및 상담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사회적 요인을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전인적 접근(humanis-tic approach)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환자 중심의 접근(patient-centered approach)은 국내·외 문헌을 통해 보건의료전문가들에게 필요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29)-31) 특히 환자와 보건의료전문가 사이의 의사소통을 개선하여 환자가 자신의 치료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복약 순응도와 치료 효과 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32)-36) 따라서 약사가 심리적, 사회적 요인까지 고려하여 환자를 지원한다면, 포괄적인 건강 관리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이러한 역량을 갖춘 약사가 한국에서 도입되고 있는 팀 기반의 협력 진료 모델(collaborative care mod-el)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의료 전문가들과 함께 협력하여 보다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이끌고, 환자의 건강을 다각적으로 고려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멘토약사(Mentor Pharmacist)의 전인적 건강 관리
앞서 약사는 전인적 접근을 통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환자를 만날 수 있는 일차보건의료 전문가로서 환자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의사소통 범위를 넓혀 환자의 생활습관, 심리적 상태, 사회적 요인을 포함하는 전인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질병의 본질이 될 수 있는 스트레스에 대한 깊은 대화가 어려운 현실과 환자-의료인 간 비대칭적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환자의 질병 경험은 개인마다 다르며, 이러한 경험을 획일화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각 환자는 독특한 삶, 문화적 배경, 심리적 상태를 가지고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이 겪는 질병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37) 이에 따라, 저명한 의료 인류학자인 Ar-thur Kleinman은 환자의 질병을 이해하려면 개인적인 이야기와 그들이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인지하고 대처해 왔는지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38) 환자는 본인이 겪은 질병을 설명할 때 주로 주관적인 경험(개인적인 이야기, 증상, 우려 등)을 공유하는 반면 의사와 약사는 이를 객관적인 의학적·약학적 지식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환자의 주관적인 경험과 보건의료인의 객관적 분석 사이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역량은 의사뿐만 아니라 약사에게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Fig. 3).
실제 서사 의학(narrative medicine)에 기반한 의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의사의 병리학적 지식과 환자의 이야기 사이에 발견되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환자의 이야기(narrative)에 집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39) 의료 서비스 제공자가 환자의 이야기에 대해 인식(recognize), 흡수(absorb/metabolize), 해석(interpret) 및 행동(move)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40) 이러한 맥락은 약사가 환자와 깊은 대화를 통해 그들의 건강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건강 목표 달성을 돕기 위해 임상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환자의 질병 경험, 생활 방식, 심리적 상태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에서 약사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새로운 용어가 도입될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멘토링의 본질이 멘토의 경험과 통찰력을 통해 멘티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점을 고려할 때, ‘멘토약사’라는 용어는 환자의 건강 관리 과정에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개념을 잘 반영한다고 생각한다(Fig. 4).
그렇다면 서사 의학적 관점에서 멘토약사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환자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고려해 보고자 한다(Fig. 5).
• 인식 : 약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그들의 삶과 경험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통해 환자가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여, 치료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치료 과정에 대한 순응도 향상 및 질병 관리 및 회복을 촉진한다.
• 흡수 : 약사는 환자의 말을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그들의 감정과 경험을 내면화하고 공감해야 한다. 이 과정은 환자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 해석 : 약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전문적 지식과 연결시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질병의 근본 원인이 되는 문제(스트레스)의 본질과 환자의 경험을 더 넓은 의학적, 약학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의사와 협의하여 적절한 치료 방향을 수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행동 :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 약사는 법적 권한 내에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한다. 이는 약물 중재(medication reconciliation), 생활습관 등 조언(education and behavioral counseling)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질병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스트레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대화를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환자 중심의 치료에서 약사의 적극적인 역할을 가능하게 하며, 환자와 약사 간의 신뢰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41) 또한 팀의료 내에서 약사의 역할이 강조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약사 교육의 혁신 : 전문성에 인문학적 접근을 더해야
멘토약사로 성장하기 위해 약학대학 학생들과 현재의 약사들은 어떤 역량을 개발해야 하며, 이러한 역량을 키우기 위한 교육과 학습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대한 실마리는 서사 의학이 의학 분야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가르치기 위한 의학 교육의 접근 방식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빅데이터와 AI와 같은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들이의학 분야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서사 의학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 진보된 기술들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서 효율성과 정확성을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통해 의사가 환자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라 더 맞춤화된 치료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증가하는 만성 질환과 정신 건강 문제와 같이 개인의 경험이 치료 및 관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42),43) 서사 의학은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의료 과정에서의 의사소통을 개선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의과대학 학생 및 의사들이 서사적 역량(narra-tive competence)을 강화하기 위해 학습자가 의료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자신과 환자의 경험, 감정, 의사결정을 성찰하고 기록하는 성찰적 글쓰기(reflec-tive writing)에 참여하도록 강조한다.44) 성찰적 글쓰기는 학습자가 자신의 감정과 태도를 탐색하고, 공감 능력을 키우며, 환자 중심의 의료 실천을 위한 인간적 측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에서는 임상실습 중인 학생들은 임상상황에서의 전문직업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성찰일지(reflective journal)를 쓰고, 이를 소그룹 토론을 통해 교수의 지도 아래 함께 성찰하는 것이 강조하고 있다.45) 의사들은 환자 케이스 리포트를 작성하며 진료 결정, 진단 접근법, 치료 방식 등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거나, 교수로서 학생들의 성찰 과정을 지원하고 성찰 일지에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성찰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2000년 한국의과대학학장협의회의 보고서에서 제시된 의료에 필요한 인문사회과학 지식과 관리 능력을 갖춘 의사 양성과 일치한다.46) 보고서는 의료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도덕적, 이타적, 지도자적인 의사의 필요성과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 성찰적 글쓰기는 이러한 교육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서 학생들이 의료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의료 실천에 필요한 특성을 내면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학 분야의 사례를 통해 볼 때, 약사가 의약품 전문가를 넘어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관리 전문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사적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약학계 내에서도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건강과 질병을 탐구하는 교육의 필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47) 물론 약학대학에서는 이미 1년간의 실무실습 기간 동안 학생들이 성찰 일지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으며, 통합 6년제로의 전환과 함께 다수의 학교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및 인문약학 관련 과목을 신설하여 학생들의 성찰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약사들 역시 환자와의 상담 후 상담일지를 작성함으로써 성찰적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약학대학에서 학생들이 작성하는 성찰 일지에 충분한 피드백이 제공되는지, 그리고 해당 과목들이 실제로 약사의 커뮤니케이션 및 공감 능력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많은 약사들은 조제, 의약품 및 약국 관리 등 바쁜 업무로 인해 환자와 충분히 상담하거나 상담 후 성찰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약학대학과 약사 사회뿐만 아니라 의과대학과 의사 사회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48),49) 자기성찰적 활동을 촉진하고, 학생들의 성찰적 결과물에 대한 교수진 또는 동료 간의 적극적인 피드백 공유가 필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학생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이나 약국에서 환자를 직접 대하는 약사들에게도 연수교육 과정에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서울대학교병원 약제부에서는 매년 약학대학 실습생과 현장에서 근무하는 약사들을 대상으로 환자의 삶과 건강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적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약제부의 ‘환자상담 위원회’에서는 환자와의 상담 내용을 성찰해 보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직원 스스로 돌아보기’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전문성과 책임감, 인성, 의식 향상을 위한 성찰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멘토클라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약사들의 인문학적 접근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고, 성찰을 통해 서사적 역량을 개발하여 환자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화하며, 비판적 사고의 폭을 넓혀 환자에게 맞춤형 조언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Fig. 6).
결론
현대 서양의학은 갈레노스와 파라켈수스의 영향 아래 수술과 약물치료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접근은 인류의 수명 연장과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했으나, 암과 치매 같은 난치병과 만성 질환, 정신 건강 문제의 증가로 인해 현대 의·약학에서는 육체적 증상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요인을 아우르는 치료 방식으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한편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의 도래로 사회와 의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약사에게 전례 없는 기회와 도전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약사는 단순한 의약품 전문가를 넘어서, 환자의 전인적 건강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약사는 디지털 도구와 기술을 활용하여 약학적 전문성을 강화하는 한편, 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심리적, 사회적 요인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건강 관리에 참여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약학대학에서의 인문약학 교육과 약사를 위한 연수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고대 서양의학의 주요 인물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를 중심으로 한 의료 접근법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질병이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난 삶에서 비롯되며, 인간이 자연스럽게 치유할 수 없는 병은 없다고 보았다.히포크라테스의 전인적 치료 중심의 관점은 현대 의학이 질병 치료에 접근하는 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철학을바탕으로, 인간을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보는 관점에서, ‘멘토약사’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약사들이 ‘멘토약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모두 관리해 삶의 질을 높이고, 질병의 근본 원인 해결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Figures
** Bujold, M. et al.(2022)에서 제시한 키워드를 기반으로 재구성하였음
** European Mentoring&Coaching Council에서 제시한 Competence Framework V2(2015)을 재구성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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